하나님이 악하게 여기시는 것 (삼하 1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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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odah 조회 61회 댓글 0건 작성일 26-06-13 20:18본문
내 기준에 좋은 것을 선으로 삼으면 갈등과 혼란이 생깁니다.
성경은 선악의 기준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 요압, 우리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악하게 여기시고
무엇을 선하게 여기시는지 보여줍니다.
1. 다윗처럼 은폐하려는 것을 악하게 여기십니다. (14,15절)
다윗은 밧세바와의 죄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회개하지 않고
죄를 감추기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결국 우리아의 손에 자신을 죽이라는 편지를
들려 보내는 끔찍한 살인교사까지 저지릅니다.
이러한 타락은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 안일함에 빠져 하나님보다 자신을 바라본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간음의 죄를 숨기려다 살인죄까지 범하게 되었고,
작은 죄를 방치한 결과 더 큰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죄는 감춘다고 해결되지 않으며, 은폐할수록 더욱 커집니다.
성도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살피며 작은 죄라도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숨기면 죽지만 하나님 앞에 드러내면 살 길이 열립니다.
2. 요압처럼 내 유익을 위한 기회주의적 동조를 악하게 여기십니다. (18-21절)
요압은 왕의 명령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자신의 지위와 유익을 위해 살인 계획에 동조합니다.
참된 충신이었다면 왕을 말렸어야 했지만, 그는 권력과 이해관계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보다 자신의 계산을 앞세운 것입니다.
요압은 뛰어난 능력과 처세술을 가졌지만 말씀보다 이익을 선택했고,
결국 다윗에게도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성도 역시 관계나 유익을 이유로 죄에 동참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 없이 이익으로 맺어진 관계는 결국 영혼을 무너뜨립니다.
참된 동역자는 무조건 덮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말씀의 원칙을 말하며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3. 반면 변함없는 우리아의 충성과 사랑을 선하게 여기십니다. (16,17절)
우리아는 나라와 왕을 위해 충성하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실패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선하게 여기셨습니다.
헷 사람인 우리아는 하나님의 언약을 귀하게 여기며 군사의 성별 규례를 끝까지 지켰고,
왕에 대한 신뢰와 충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모른 채 사형선고 편지를 전달하면서도 맡겨진 책임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충성을 기억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을 남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다윗이나 능력 있는 요압이 아니라,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우리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비록 손해를 보고 약자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말씀의 원칙을 따라 충성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아름다운 선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숨기는 삶과 이익을 위해 악에 동조하는 삶을 미워하십니다.
반면 자신의 안위보다 하나님 나라와 사명을 먼저 생각하며 충성하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다윗과 요압의 길이 아니라 우리아의 길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인정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선악의 기준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 요압, 우리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악하게 여기시고
무엇을 선하게 여기시는지 보여줍니다.
1. 다윗처럼 은폐하려는 것을 악하게 여기십니다. (14,15절)
다윗은 밧세바와의 죄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회개하지 않고
죄를 감추기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결국 우리아의 손에 자신을 죽이라는 편지를
들려 보내는 끔찍한 살인교사까지 저지릅니다.
이러한 타락은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 안일함에 빠져 하나님보다 자신을 바라본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간음의 죄를 숨기려다 살인죄까지 범하게 되었고,
작은 죄를 방치한 결과 더 큰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죄는 감춘다고 해결되지 않으며, 은폐할수록 더욱 커집니다.
성도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살피며 작은 죄라도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숨기면 죽지만 하나님 앞에 드러내면 살 길이 열립니다.
2. 요압처럼 내 유익을 위한 기회주의적 동조를 악하게 여기십니다. (18-21절)
요압은 왕의 명령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자신의 지위와 유익을 위해 살인 계획에 동조합니다.
참된 충신이었다면 왕을 말렸어야 했지만, 그는 권력과 이해관계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보다 자신의 계산을 앞세운 것입니다.
요압은 뛰어난 능력과 처세술을 가졌지만 말씀보다 이익을 선택했고,
결국 다윗에게도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성도 역시 관계나 유익을 이유로 죄에 동참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 없이 이익으로 맺어진 관계는 결국 영혼을 무너뜨립니다.
참된 동역자는 무조건 덮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말씀의 원칙을 말하며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3. 반면 변함없는 우리아의 충성과 사랑을 선하게 여기십니다. (16,17절)
우리아는 나라와 왕을 위해 충성하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실패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선하게 여기셨습니다.
헷 사람인 우리아는 하나님의 언약을 귀하게 여기며 군사의 성별 규례를 끝까지 지켰고,
왕에 대한 신뢰와 충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모른 채 사형선고 편지를 전달하면서도 맡겨진 책임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충성을 기억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을 남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다윗이나 능력 있는 요압이 아니라,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우리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비록 손해를 보고 약자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말씀의 원칙을 따라 충성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아름다운 선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숨기는 삶과 이익을 위해 악에 동조하는 삶을 미워하십니다.
반면 자신의 안위보다 하나님 나라와 사명을 먼저 생각하며 충성하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다윗과 요압의 길이 아니라 우리아의 길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인정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